이용와 공월선,
김환과 별당아씨,
심금녀와 장인걸,
서희와 길상...
서로가 서로를 위하지만 우여곡절 속에 온전히 함께할 수 없어 애절하다.


87 지금까지,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만은 타인이었다. 오 년 동안 - 서희가 독단으로 일을 진행해왔었다. 그 독단은 서희의 의사였다기보다 조선에서 매입되는 토지에 관한 일엔 길상이 극단적으로 회피해온 것이 실정이다. 서희는 서희대로 얼마나 외로웠을 것인가. 그러나 서희는 의지로써 뻗쳐왔고 길상은 애정 때문에 뻗쳐왔다.

397 모래밭을 핥고는 물러가고 핥고는 물러가는 물결 소리만, 목마른 사람같이 핥고는 물러설밖에 없는 안타까운 갈증에 몸무림치듯 강물은 달빛 아래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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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몬교도인 아버지로 인해 극단적인 삶을 살아간 주인공과 가족의 이야기이다. 잘못된 신앙관과 정신병적인 행동으로 학대당했던 일들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일부지만 사랑을 보여주는 말과 몸짓, 즐거운 추억들을 간절하게 함께 그렸다. 보고 배운 것의 전부가 가정이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정상이 다수인 그 안에서 그녀는 별종이었다. 가족과 주변인들은 철저히 세뇌당했고 그녀는 비난당했다. 숨어있던 빛이 틈새로 나오면서 가정 밖으로, 대학으로 그녀의 등이 떠밀리듯 떠날 수 있었다.

몸은 탈출했지만 진정한 탈출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배움을 통해 알게되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세뇌 당한 가족과 그리고 자신과 싸워야했다. 곪고 터지고 넘어지고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 치면서 공부하고 생각하고 자신를 찾아나갔다. 과거의 역경은 남다른 철학과 사고를 보여줄 수 있는 재료가 되고 무기가 되어 더 크고 넓은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녀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359 「하지만 내가 여자였다면 그게 내 꿈이 아니었겠지. 여자들은 다르게 태어났어. 여자들은 이런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 여자들은 아이를 갖는 게 야심이지.」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것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고, 몇 초 동안 우리는 의견 일치를 본 듯했다.
그런 다음 내가 물었다. 「하지만 네가 여자인데, 그래도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하고 싶다면 어떨까?」
조쉬는 한동안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질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겠지.」

361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내 소명을 다하라는 신의 부름과 내 마음속에서 나를 부르는 다른 목소리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원했었다. 그러나 케리 박사는 그런 내 질문은 옆으로 밀어놓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먼저 학생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본 후,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세요.」

371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에요. 지상에서 이 정도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면 공중에서도 이 정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유일한 차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지요.」

375 책에 쓰인 말들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읽는 것은 전율이 흐를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 특히 그들의 결론보다 버크의 결론에 나 스스로 동조하게 될 때, 혹은 그들의 생각이 내용 면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더욱 컸다.

404 피가 머리로 몰려들었다. 아드레날린과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느낌이 함께 밀려들면서 내 정신을 깨웠다. <여성의 본질에 관한 어떤 지식도 최종적 결론이 될 수는 없다.> 진공 상태, 지식이 부재하는 검은 공간에서 그만큼 위안을 얻어 본 적이 없었다. 밀의 선언은 <네가 무엇이든 간에, 네가 여성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422-423 <너는 내 딸인데, 내가 너를 보호했어야 했는데.>
.. 엄마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내게 되어 주지 못했다는 말을 한 순간,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되었다.

492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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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세상에 발전하는 기술은 불안과 기대의 시선을 받는다. 저자는 부정적인 시선 속에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는다. 기술을 거부하는 것보단 선용되도록 힘쓰는 편을 권해본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58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87 탐험자여,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무렵 나는 죽은 지 오래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고별의 말을 남긴다.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경이로움에 관해 묵상하고, 당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라.


@우리가 해야 할 일

미래가 이미 결정됐다면? 그리고 예측기의 보급으로 결과를 알 수 있다면?

94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가상환경에서 동물 또는 로봇 형태의 디지언트가 만들어진다. 이 디지탈 유기체는 게놈 엔진을 통해 인지 발달을 지원하며 친밀감을 통해 교육시킨다.
입양된 아이나 반려동물에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 유기체까지 확대된 윤리적인 문제를 생각해본다.

157 복잡한 정신은 스스로 발달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야생화된 인간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정신은, 무관심 속에서도 혼자서 쑥쑥 자라는 잡초처럼 자라지는 않는 법이다.

199 "너를 돌볼 필요가 없다면 내 인생은 좀더 단순해질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만큼 행복하지는 않을 거야. 사랑해, 잭스."
"나도 사랑해."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불안한 사람이 아닌 기복이 없는 기계 보모가 돌본 아이는 기계와 소통하고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사람보다 기계와 안정감을 느낀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개인 블랙박스 같은 리멤으로 모든 것이 기록된다. 기억과 망각, 사실과 진실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해본다.

271-272 리멤은 당신이 하는 말을 모니터하고 있다가, 과거의 사건들을 언급하면 시야의 좌측 하단에 해당 사건의 영상을 띄운다.
...리멤이 편리한 가상 조수 이상의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 기억을 대체해줄 도구라고 말이다.

301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329 그리고 나는 디지털적 기억의 진짜 혜택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요점을 말하자면 이렇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거대한 침묵

동물이 멸종하듯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사라지고 있다.

336 페르미의 역설에 대해서는 이런 가설이 있다. 지적 종들이 안 보이는 것은 적대적인 침략자들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기 존재를 감추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인간들에 의해 멸종 직적으로 내몰린 종의 일원으로 말하는데, 나는 이것이 현명한 적략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340 에스퍼레이션aspiration이라는 단어에 염원과 숨을 뱉는 행위 양쪽의 뜻이 모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말을 할 때, 우리는 우리 폐의 숨을 이용해, 우리의 생각에 물리적인 형태를 부여한다. 우리가 내는 소리는 우리의 의도인 동시에 우리의 생명력이다.
나는 말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옴팔로스

과학을 통해 신앙을 버린 사람도 있고, 신앙이 깊어진 사람도 있다. 모든 과학적 증거가 진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확실하다.

'당신이 저를 위해 그것을 선택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저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멘.'라며 신의 뜻을 묻던 주인공은 자신의 뜻을 따르기로 하며 마친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488 그 사람들이 쉽게 그럴 수 있는 것은 선하게 행동하려는 작은 선택을 예전에도 여러 번 했기 때문일 거예요. 내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건 예전에도 이기적으로 행동하려는 작은 선택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겠죠. 결국 내가 선하게 행동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나 자신이었던 거에요. 그걸 고칠 필요가 있었어요. 아니, 고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군요.



나라를 찾고자하는 마음은 하나이나 각자가 그리는 나라는 여러 모양이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이들의 힘이 합쳐지지 않는다.


81 "...잘 묵고 잘 입고 근심걱정 없는 사람들이사 머가 답답해 백성들 생각하겄소? 우리 같은 놈 아니믄 누가 나가서 일할 깁니까...."

272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 마음가짐 아니고서는 하룬들 어디 부지하겠소? 오로지 나라 찾을 일심으로, 그게 또 보람 아니겠소? 우린 배부른 돼지는 될 수 없으니 말이오."

338-389 '...나는 이조 잔재에 눌리어 이리 늙어가고 있다. 한땐 나도 그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했었지. 옛날 그 동학란 무렵만 해도 그들을 이해했었다. 처음 이곳 노만(露滿) 국경을 방황하면서 무엇인가를 잡은 듯했었다. 그러나 서희와 길상의 혼인을 나는 진심에서 축복하지 못했고 새로운 물결을 타려 할 때 왜 난 내 언동은 어릿광대로만 느껴졌을까.'


 

C. S. 루이스 책 번역을 전담?하다시피 활동하는 '번역가 홍종락의 C. S. 루이스 에세이'

나도 C. S. 루이스와의 시작은 지인이 손에 들고있어 물어보고 빌려읽은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였다. 그러다 잊고 어떤 길(책)을 가다보면 그의 책이 언급된 글을 만나고 다른 책을 읽었다. 그러다 아예 하나씩 모두 읽어보자로 바꼈다.

자연히 번역가로 시선이 돌려졌고 이 책도 읽게됐다. C. S. 루이스의 그간 읽었던 책들을 제대로 다시 읽고 싶다. 특히 <나니아 연대기>와 <순전한 기독교>.


14 루이스는 어릴 때부터 자유로운 상상력과 이성적 논리 사이에서 분열을 경험했다. 그가 사랑하는 시와 신화는 모두 상상의 영역에 속한 것, 말하자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그가 실재라고 믿는 것은 모두 음산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기독교를 믿고 나서 그 안에서 상상과 논리의 통합을 경험했다.

15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 <고통의 문제>

39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삶으로 어떤 번역을 하고 있는가?
- <피고석의 하나님>

172 "아담이 '나쁜 일을 따라 하는' 대신 하와를 나무라거나 꾸짖고 그녀를 위해 하나님께 탄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실낙원 서문>

173 그때 모세는 먼저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엄하게 꾸짖은 후, 그들을 벌하시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막고 섰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청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196 그런데 아슬란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너희를 부르지 않았다면, 너희도 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 나니아 연대기 <은의자>

213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의 품 안에서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붙들고 계셨음을,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반집승으로 이어지는 귀한 '순간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돌아보면 줄곧 '가까스로',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항상 '넉넉히'."
- <순례자의 귀향>

 

창덕궁 후원에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책을 펼쳤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해설사 없이 자유관람을 하면서 공백의 여유를 느꼈다. 여유있게 머무르고 오고가며 바라보는 모든 전경이 아름다웠다.

 

 

 

126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라는 것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300-301 근래 와서 다행이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 정조 「만천명월주인옹 자서」 中




읽는데 참 불편해서 진도가 잘 안 나갔다.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 싶고. 하지만 세상엔 이렇게 사는 사람이 존재하니  방어하고 살아남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법칙들이다.


10 설령 상대의 등을 찌르더라도, 손에 벨벳 장갑을 끼고 얼굴에는 더없이 온화한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했다. 완벽한 궁정신하는 강압이나 노골적인 배반 행위를 이용하는 대신, 유혹이나 매혹, 기만, 교묘한 전략 등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었으며 늘 몇 수 앞을 계획하고 행동했다.

16 권력은 근본적으로 도덕과 관계가 없다. 권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는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능력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권력은 게임이다.

17 누구를 연구하고 누구를 신뢰할 것인지 구별해놓지 말라.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믿지는 말고 모든 사람을 면밀히 연구하라.

253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것는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적게 요구하면 그만큼만 얻게 된다. 하지만 많이 요구하면 당신이 왕만큼 가치있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다.
... 조용하게 확신을 보여라. 절대 의구심을 보이지 말고 위엄을 잃지도 말라.
... 행동은 고상하게 하고, 뜻은 높게 품어라.

447 권력자는 젊었을 때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형태로 새로운 것을 보여준 이들이다. 사회는 새로움을 갈망하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이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문제는 다음에 발생한다. 그들 중 다수가 보수적이거나 소유 지향적으로 변한다. 그들은 더 이상 새로운 형식을 꿈꾸지 않는다. 정체성이 확립되고 습관이 굳어지며 완고하여 손쉬운 목표물이 되고 만다. 누구나 그들의 다음 단계를 알아챈다.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권태 유발의 주범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무대에서 떠나라! 우리를 즐겁게 해줄 새로운 젊은 피가 필요하다. 권력자가 과거에 갇히면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 권력은 형식이 유연할 때만 번영할 수 있다. ... 강자는 끊임없이 형식을 창조하고, 그의 권력은 신속하게 변신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아일랜드인 두 명이 호메르스 서사시를 조사를 위해 알마니아 작은 산악마을 N군으로 왔다. '물소의 뼈'라는 오래된 여인숙에서 음유시인을 만나 서사시를 녹음하고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왔지만 알마니아는 그들은 스파이로 의심하고 감시하며 엉뚱한 코미디가 벌어진다.

옛날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음유시인들을 통해 글을 사용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흔적을 보면서, 기억과 망각과 변환의 속도의 차이로 현실의 시간 감각까지 바꿔버리는 이상한 세계의 신비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글이 생겼고 녹음기가 생겼고 사진기가 생겼다. 지금은 모든 기능을 집약한 스마트폰이 있다. 기술의 발전은 말의 무게와 힘, 기억하는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기계는 사람을 이롭게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깊숙히 숨겨진 음유시인의 DNA가 발현될지도..

37 우리는 아주 가난한 나라야. 이런 나라에서 흔히 그렇듯, 정보를 알아내는데 눈은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해. 이곳 사람들은 대다수가 문맹이고,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즐기지 않거든. 글이나 편지를 쓴다거나 신문을 규칙적으로 읽는 사람은 드물지. 서명이나 도장 찍힌 서식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유산상속 같는 일조차 여기선 모두 구두로 하니까 말야. 그럼 서명이나 도장 대신 무엇으로 어떻게 하냐고? 그건 위협이야. "내가 말한 거 안 해주면 끝장날 줄 알아!" "크게 다칠 줄 알아!" "죽어서 땅에 못 묻힌다구!" 등등.

 



폴 투르니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도 아니며 혼자가 유익한 순간이 있지만 함께가 유익한 순간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피로를 줄이기 위해 혼밥, 혼술과 같은 1인 사회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균형이 무너지고 있고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나부터도 혼자 있기를 강하게 선호한다. 점점 인간 관계를 중립적이고 냉정하게 대하려고 맘을 먹을 정도다.

폴 투르니에는 사회 변화의 원인을 역사적, 철학적, 의학적으로 깊게 고찰하며 그 해결책으로 인격적인 관계 회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여성의 역할이 크다고 얘기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고통스런 사건을 겪으며 두려움에 떨었고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지성 중심, 이성적, 객관적인 것을 내새웠고 상대적으로 직관, 감정적, 주관적이 요소를 제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극단적인 역경은 속죄양 메커니즘(비난과 고발 대상 찾기) 발현시켜 약자를 공격했다. 결국 후자 성향이 강하고 약자인 여성은 희생양이 되어 가정에 겪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근 400년간 그렇게 살아왔으니 무의식에 깊이 각인될 정도의 시간이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말이다.

그 결과 사회 안에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감정을 배제한 관계는 상대를 인격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도구로 보고 개인화를 주장하며 선을 그었고 고독과 우울로 병들고 아파하고 있다. 혼자만의 두려움과 싸우다가 쓰러지거나 자기 방어적인 비난과 경멸, 혐오, 무시를 위한 단체에 숨는다.

긴 세월동안 소외된 여성들은 여성 해방 운동에 뛰어들었고 엄청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여성들이 남성들만큼(남자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뿐이며, 이는 남자들의 방식을 순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여성적인 요소와 강점을 부활시켜 이전의 요소들과 상호 보완적인 균형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요구한다. 반면 힘을 합치기 위해 여성단체가 개인을 억압하는 모순도 일부 나타나는데 개인(또는 소수)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내새우길 강조한다.

여성의 참여로 사물의 세계를 개선시켜가면서 동시에 삶과 감정을 나누는 인격의 세계를 균형있게 유지될 수 있기를 권하고 고대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37 그러므로 우리 문명에서는 사물에 대한 취향과 인격에 대한 감각이라는 상호 보완적인 두 극이 균형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 남성 중에도 인격 감각을 지닌 사람도 있고, 여성 중에도 과학 기술과 사물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의 상호 보완성은 남성과 여성 간의 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내적으로 우리 각자 속에 있는 두 성향 간의 조화 문제이기도 하다.

56 이 세계에서는 객관적인 연구가 가능한 질병은 정복되었지만,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신경성 질병은 증대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막대한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긴 했지만 삶의 질은 저하된 사회에 살고 있다. 삶의 질은 다른 질서, 곧 감성의 질서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116 직장 일이든 감자 껍질 벗기는 일이든 여성은 결코 어떤 것을 위해 일하지 않고 항상 누군가를 위해 일하게 마련이다. 여성은 자기 남편이나 고용주가 허망하고 이기적인 인간임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착취당하는 종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122 하지만 지금까지는 고용에 관한 한 여성 해방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룩한 것이라고는 겨우 과거에는 남성이 지배했던 전문직들을 여성에게도 개방한 것인데, 그것도 여성이 남성들이 만든 규칙에 순응한다는 조건과, 명령을 내리는 직책이 아니라 명령에 순응하는 직책만을 맡는다는 조건하에서 허용한 것이다.

134 민주주의 수립의 첫 번째 단계는 소수가 다수를 압제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는 더욱 성취하기 어려운 단계로서 다수가 소수를 압제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229 경멸은 욕망과 결부되어 있는 동시에 두려움과도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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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와 길상. 갈등과 고통이 커지고 깨질 것 같았던 순간 사고를 계기로 다시 연결되고,
봉순, 환이, 관수, 석이 ..... 흩어지고 끊어졌던 이들이 다시 등장하며 끈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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