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에 헨리는 작가 얀 마텔 그 자체였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하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의문과 글에 대한 철학, 출판사와의 쉽지 않는 미팅, 나중에 유명작가라는 것을 알았을 때 상대의 변화...

헨리는 박제사가 보낸 우편물에 호기심?호감?을 갖고 다가갔다. 헨리 이외에는 모두 그를 혐오했는데 실감나는 박제와 희곡 속의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무뚝뚝하고 남과 소통할 줄 모르고 일방적인 박제사지만 그가 쓴 희곡에 투영된 그의 이야기가 그에 대해 단서를 내놓는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처음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소설이라고 명시했지만 어느 부분이 어떻게 관계된 건지 미궁 속에서 시작한다. 처음 단서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엽기적인 단편, 그리고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함원숭이 버질이 나오는 희곡의 조각조각이 차례로 주어졌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유대인들로 보여서 박제사가 유대인인가 싶었는데 점점 드러나는 이야기로 그는 박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런 인간의 잔인성, 시체보다 지독한 악취를 희곡에서 말한다. 어떻게 보면 버질의 꼬리를 잘라낸 자도 그였고 박제로 붙인 자도 그였다. 박제로 꼬리는 감쪽같이 붙어있지만 이어붙인 상처가 남았고 이미 죽은 존재이다. 되돌릴 수 없다. 조각들이 맞아들어가며 전체 그림의 윤곽이 보이면서 긴장됐고 떨렸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박제사는 희생자가 주인공인 희곡을 썼다. 그들의 고통과 두려움과 사랑에 대해 깊이 헤아렸을 것이다. 박제사는 과거를 반성했던 걸까? 구원받길 원했던 걸까? 심판받길 원했던 걸까? 무엇보다 의문점인 것은 어떤 포인트에서 헨리는 갑자기 박제사를 혐오하게 되었는지다. 그때까지도 그가 박해자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혐오하고 거부하는 헨리에게 왜 박제사는 폭력을 가했고 스스로 홀로코스트가 되었을까?

[파이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후반으로 들어가자 가슴이 저미는 충격이 있었고 결론은 독자에게 넘겨졌다. 여운이 감돌아 한동안 되씹을 것 같다.

 
6 20대 초반에 「신곡」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단테가 그처럼 안내자를 활용한 수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안내자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 모두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서문 중)

19 삶에 대한 우리의 감상과 지식은 서점과 도서관에서도 픽션과 논픽션으로 구분돼 다른 통로와 다른 층에 진열된다. 출판사들도 책을 기획할 때 상상을 다루는 픽션과 이성을 다루는 논픽션을 구분한다. 하지만 작가는 둘을 뚜렷이 구분하며 글을 쓰지 않는다. 소설이라고 철저하게 비이성적인 창조물이 아니며, 평론이라고 상상력이 철저하게 배제된 글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뭔가를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상상에 관련된 부분과 합리적인 부분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이 있을 뿐이다. 우리 삶에서 그렇듯이, 책에서도 초월적인 기준이 있다면 진실과 거짓이다. 따라서 진실을 말하는 픽션과 논픽션을, 거짓을 이야기하는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하는 편이 훨씬 낫다.

65 이야기 어디에서도 동물들을 살상하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고, 그에 따른 응보도 없다. ...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며 쥘리앵과 하느님의 화해를 확실하게 해주지만, 동물에게 가한 폭력은 해결되지 않은 중대한 문제로 남겨졌다.

98 헨리는 그 박제사가 자신에게 보낸 희곡을 정말 그가 썼을까 의심스러웠다. 이처럼 지독히 진지한 거인이 배에 대해 장난 같은 희곡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예술은 종종 내면에 깊이 감춰진 자아를 드러낸다.

141 버질: 내 생각에 믿음은 햇살을 받으며 지내는 것과 비슷한 거야. 햇살을 받고 있을 때 그림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어? ... 햇살을 받고 있는 한 네가 어디를 가든 그림자는 따라다녀. 그런데 햇살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57 "현실은 우리 능력을 넘어섭니다. 현실을 말로 완벽하게 표현하기는 힘듭니다. 간단한 배조차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모든 걸 먹어버립니다."

180 베아트리스: '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고 물었어.
(버질이 넘어진다.)
버질: 그건 우리가 살아남을 때 말이지.

203 "동물들은 수천 년을 견뎌왔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아서도 견뎌냈고 적응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본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
"변해야 하는 건 우리지, 그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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