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피아니스트 라이더씨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전후사정을 알고 이해할거라는 투로 얘기하고 적당히 아는 척하고 맞장구만 쳐도 문제없이 계속 얘기가 이어진다. 그들은 라이더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자기 생각만을 앞세우고 남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라이더씨에게 이것저것을 부탁한다. 우유부단한 라이더씨는 거절고 못하고 들어준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과 혼란 속에 부탁을 들어주기 어렵다. 어떤 때는 우연히 부탁들 들어줄 수 있었다.
라이더씨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부탁을 했던 사람들을 분노하며 따진다. 라이더씨의 사정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 라이더씨 사정이 어떻든 자기가 원하는 바만 이루면 되는 것처럼. 아쉬울 땐 한없이 친절하고 굽신거렸던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잘해준 것처럼.
아내로 추정되는 소피와 아들 보리스가 있다. 라이더씨와 소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보리스가 곧 라이더씨고, 부모님이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슈테판이 곧 라이더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그렇게 들어주려 하느라 가족을 소외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두려워 가족을 외면한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흐름은 깨어나지 않는 꿈 같다. 정신 착란을 일으킨 것 같고, 자기 입장만을 말하고 거짓 미소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면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실제로 다운되고 지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거지? 이런 이야기를 어떤 상태로 어떤 마음으로 쓴걸까.. 사정도 모르고 끌려다니는 느낌이 흡사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소송>과는 달리 작은 반짝임으로 마음의 안정을 다시 찾도록 도와줬다. (병주고 약주고;)
239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모두 다 마찬가지야. 하고많은 밤 중에 하필이면 오늘 밤, 나한테 도대체 뭘 해 달라는 거지? 하지만 그건 다른 곳도 모두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나한테 모든 것을 기대하지. 오늘 밤에 사람들이 나한테 덤벼든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거야.
330 그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었고, 단지 끼어들 기회를 잡기 위해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362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곳 사람들이 요구하는 갖가지 임무 때문에 주눅이 들곤 했다. 거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염려였는가를 깨달았다.
'머리로 떠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 마쓰무라 게이치로] (0) | 2018.10.26 |
---|---|
[악기들의 도서관 - 김중혁] (0) | 2018.10.26 |
[가족을 위로한다 - 오거스터스 네이피어, 칼 휘태커] (0) | 2018.10.11 |
[태엽 감는 새 - 무라카미 하루키] (0) | 2018.10.08 |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0) | 2018.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