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씨부인의 죄책감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아들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최치수의 예민함이 더해져 불행을 배로 만들며 죽음 이전의 삶도 산다고 할 수 없었다. 산에 들어가 구천이를 발견하고 잠깐 사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201-202 구천이를 발견한 후 이틀 동안 치수의 모습은 아주 발랄했으며 줄기차고 정력적으로 보이었다. 겨우 초당과 사랑 사이를 오가며 말벗도 별로 없이 패쇄되고 나태하고 병약하여 파아랗게 썩어서 고여 있는 연못물 같았던 생활을 해온 최치수가 옷이 젖도록 땀을 흘렸으며 팽팽하게 긴장된 피부, 상기된 분홍빛 혈색, 눈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슬기로워 아름답기조차 했던 그 모습에는 초초함이 없었다. 권태로워 보이지 않았다. 냉소를 띠지도 않았다. 생명이 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시간을 잊을 수 있었던 희열이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 때문에 보다 불행했었던 사나이가 겹겹이 싸인 울타리 안의 고래 등 같은 지붕 밑에서 잠이 오지 않는 한밤중이면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며 혼자 미치곤 했었는데 팽팽했었던 이틀을 보내고 하산을 생각해보는 지금, 썩어서 고여 있는 연못물 같은 망상이 다시 비상같이 핏즐을 타고 돌아오고 있었다.
가난한 서민들이 인정을 베풀고 도리를 다해 지키는 반면 천한 신분이라고 체통 없이 살거나 탐욕을 부린다.
299 하긴 어느 세월이든 본시의 것을 오래 지키는 쪽은 서민인가 하오. 지금 친일하여 삭발하고 양풍을 따라 의관을 바꾼 사람들은 모두 양반들 아니겠소?
...
그거는 그렇고, 듣자니까 서울서는 만민공동회라던가 관민공동회라던가? 뭐 그런 것이 생겼다 하는데 대체 그것은 무엇이오? 말로는 고관대작에서부터 아녀자 백정까지 한자리에 모여서 시국을 논했다 하는데 그게 사실이오?
422 조석으로 대하던 이웃의 죽음을 보면서 불로초도 아니겠고, 하늘에서 뿌려지는 엽전도 아닌데 욕심을 내어 뒤질세라 서둘렀던 아낙들은 차츰 제풀에 민망해져서 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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