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다소 어려웠지만 놀랍고 흥미로왔다.

레빈과 키티, 브론스키와 안나...

수많은 사람들의 말, 행동, 심리가 그려진 것을 읽다보면

이들이 모두, 나까지 발가벗져진 것 같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톨스토이 작가 연보와 해설을 보니

이들은 모두 톨스토이 그 자신의 일부분이었기에

그렇게 묘사할 수 있었으리라..

방탕한 생활을 지내기도 했고

농업과 농민에 관심이 많았고

군에 복무하기도 했다.

수많은 아이들 둔 부모이며

교육과 신앙을 위해 싸웠고

아내는 돈 때문에 철도자살을 기도했었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마음,

아니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도 구별하기 어려운..

그렇게 믿는 것인지 믿고 싶은 것인지..

 

역사, 정치, 사상, 종교, 사회에 대한 토론...

세상을 고민하는 이들인지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는 이들인지..

 

 

 

 

전에 그리 깊지 않았던 내 신앙이

 종교서적이 아닌 책을 접하면서도 보다 깊어짐을 느낀다.

 

이 책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가르쳐줬다.

레빈이 자신의 신앙을 깨우치는 부분에서

나 또한 감동하고 하나님을 만나 기쁨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또한, 여러 기독교인들이 나오면서 신앙을 가졌더라도

 위선과 나약,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보며 반성한다.

심판도 해결도 모두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2권


그러나 농민을 뭔가 특수한 대상으로서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농민과 생활을 같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모든 이해가 농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자신도 농민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자신에게서 그들과 완전히 다른 특수한 성질이나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자기를 농민과 대립시켜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p.11)


이처럼 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그는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를 비롯해서 사회적 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정'이나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인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일임을 이성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 하나로 얽매여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층 더 분명히 깨닿게 되었다. (p.13)


콘스탄틴 레빈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에게 말이란 눈으로 본 것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빼앗는 것이었다. (p.16)

 

3권

 

"어떻게 하길래 하느님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어떻게 하면 영혼을 위해서 사는거야?" 레빈은 거의 외치듯이 말했다.

"뻔하잖아요. 진리에 의해서, 하느님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뿐예요. 사람은 각양각색이니까요... (p.479)

 

'만약 선이 원인을 갖는다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다. 만약 선이 결과를, 보수를 갖는다면 그것도 역시 선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선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 밖에 있는 것이다.' (p.481-482)

 

'만약 내가 신앙을 가지지 않았고 나의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면 나는 어떠한 인간이 되어 있었을까?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까? 약탈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살인 같은 것도 했을지 모른다. 내 삶의 주요한 기쁨이 되어 있는 것들이 하나도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484)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하느님의 가르침 속에서 양육된 나는 기독교가 준 정신적인 은혜에 의해서 나의 온생애를 충만시켜왔고 온몸이 그 은혜로 채워져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아이처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파괴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자기가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를 파괴하려 있었던 것이다...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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