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표지에 써 있는 글...'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한 여자와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한 여자, 그녀는 말을 못 하는 것 보다 의지적으로(약을 거부하면서)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 말의 무게와 힘을 알았고 공포와 간극을 느꼈다. 그러다 불어시간에 비블리오떼끄(bibliotheque; 도서관)을 발음하다가 입을 다시 열게 됐다. 그녀는 왜 이 단어로 입을 열었을까? 작가는 왜 이 단어가 불씨가 되었다고 했을까?

그녀는 세월이 지나고 다시 말을 잃었다. 생소한 불어를 발음하다 찾은 것처럼 이번엔 희랍어를 통해 의지적으로 말을 찾으려고 한다. 아이를 되찾고 싶어서..

그 남자는 희랍어 강사다. 그리고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시각을 통해 감격했던 경험과 귀로 듣지 못하는 여인을 사랑했던 날을 추억한다. 남자는 입으로 말하고 여인은 눈으로 그 입술을 읽었다. 여인은 글로 쓰고 남자는 그 글을 읽었다. 자신이 완전히 시력을 잃을 때를 걱정하며 그녀가 말하기를 청했다. 그게 그녀가 상처받고 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언어가 나온다. 여러 나라의 언어와 눈빛의 언어, 침묵의 언어, 기척의 언어.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희랍어와 뿌옇게 흐린 그의 시선은 분명하지 않지만 더 많은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남자와 그 여자 드디어 만났다. 그가 보지 못하게 되고 나서야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게 된 그의 걱정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가 말을 하면 그녀가 그의 손바닥에 글을 쓰고 기척을 내면서 대화를 나눴다. 몇마디 말과 기척과 행동과 냄새로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다른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으로 전하는 말에서 진심의 정도는 얼마나 되고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는 정도는 얼마나 될까..?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알아도 모른 척 해야하고 무게와 상처로 힘겨워질 수 있다. 상대와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자신을 보며 더 다칠 것이다. 반대로 말과 진심, 의미가 일치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치유되고 열리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그녀처럼..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66

차츰 그의 얼굴이 그녀에게 낯익은 것이 되었다. 그의 평범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고유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되었다.
92

창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이 방의 정적을 바늘처럼 찌른다고 그녀는 느낀다. 수틀에 끼운 천처럼 팽팽한 정적에, 수없이 작은 구멍을 뚫는다.
152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 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17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