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1 - 박경리]

토지 다시 도전.
204-205 "...배고프고 헐벗었기 때문에 민란이 난 줄 아시오? 벼슬아치들 수탈이 심해 민란이 난 줄 아시오? 언제는 상놈들이 호의호식했었소? 울타리만 높고 튼튼했더라면 뱃가죽이 들에 붙어 죽는 한이 있어도 팔자거니 생각했을 게요. 허한 구석이 있어야, 빠져볼 구멍이 있어야 소리를 질러보고 연장더 휘둘러보고 그러다 막는 힘이 약할 것 같으면 밀고 나오는 게요, 아우성을 치면서. 천대받는 놈치고 약지 않은 놈 보았소?"
치수의 눈이 준구를 뚫어져라 본다. 어쩌면 준구를 향해 퍼붓는 욕설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릎을 꿇고 기어야 할 판이면 그네들은 그렇게 할 게요. 쇠죽을 먹더라도 목숨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밥 먹으려고 둘도 없는 목숨 내어놓겠소? 어리석은 자들, 사탕으로 꼬임을 당할 놈들인가? 어리석은 자들, 한 치를 내어주면 모조리 내어주게 되는 걸. 어리석은 자들."
206 "...몽매한 백성이란 저승이든 이승이든 그 대가가 확실해야 움직이는 무리들이고 제 이익과 관계가 없으면 관여치 않는 꾀가 있는 눔들이오. 말하자면 그들에겐 지조가 없단 말이오. 존엄이 없단 말이오. 존엄이나 지조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무리들은 아니란 말이오. 제 목숨도 제 이익을 위해 팔아버릴지언정, 그네들 속에 전봉준, 김개남 같은 인물이 없진 않았으니 필경 그네들도 야심가에 불과한 거고, 허나 무리들을 쓸 줄 알았으니 비록 적이지만 제법, 그, 그렇지요, 지금 내로라하는 서울의 벼슬아치 백을 묶어도 그네들 하나를 못 당했을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