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떠나다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아쿠내구 2019. 11. 7. 22:41



두 가지 번역본을 연이어 읽었다. 스토리를 알아도 두번째 읽을 때가 더 좋았다.

벅이라는 개가 문명에서 극한의 야생으로 들어가 생존을 위한 본능이 깨어난다. 벅의 변화를 보면서 사람이라고 다들까 싶다. 인간성이라는 건 생존의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고 전쟁, 질병, 자연재해 앞에서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는 사랑이 대비되어 나온다. 그렇게 처절하게 지켜낸 자신을 하나의 망설임 없이 내어버릴 수 있도 있다. 위와 반대로 자식을 위해 대신 죽음을 불사하는 이야기가 있듯이.

냉혹한 현실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해질 수도 있다.


@민음사('불을 지피다' 단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다.)

24 그는 갑자기 문명의 한복판에서 추방되어 원시 세계 한가운데로 내던져졌다. 그것은 게으름이나 따스한 햇볕, 그리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지루함과 거리가 멀었다. 평화로움도, 휴식도, 한순간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저 혼돈과 행동뿐이었다. 그리고 매 순간 생명과 육신이 위기에 처했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살아남았다. 그 사람들과 개들은 마을에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법이 아니라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이 따르는 야만족이었다.

33 생존경쟁이라는 무자비한 투쟁에서 도덕성은 허영에 불과하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개인의 감정과 재산을 존중하는 것은 사랑과 동포애의 법이 발휘되는 남부에서나 가능했다. 그러나 곤봉과 송곳니가 지배하는 북극에서 그런 것을 지키는 놈은 바보였고 그러다가는 살아남지 못했다.

95 원시적 삶에서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자비는 공포로 오해받았고 그런 오해는 죽음을 불렀다. 죽이느냐 죽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이것이 유일한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