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떠나다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아쿠내구 2018. 8. 11. 07:52



「쇼코의 미소」에서는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몰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냥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이번 책은 전보다 얘기를 많이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씩 보여준다. 풀어놓는 이야기에 내 생각은 멈추고 들어주는 기분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보지 못했던 사람. 미숙하고 서툴고 조급했고 불안했던 나. 그래서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을 어렵게 내려놓았던 안타까움. 상처받고 상처주는 반복들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더 말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는 알 것 같고 언제는 모르겠는데 결국은 나도 남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우리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127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180 그날 모래의 말과 눈물이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에서 나왔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됐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208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슬픔을 느끼니까.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260 랄도, 너 왜 여기 있어? 나를 보던 일레인의 회색과 초록이 섞인 눈동자를 떠올렸다. 네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답했지만 그날, 지붕 아래에 앉아서 나는 그때의 내 대답이 옳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너 왜 여기 있어?